
지난 가을, 직접 수확한 홉을 넣어 만든 페일 에일을 처음 선보였다. 향만 맡아도 풀잎 사이를 걷는 듯한 청량감이 퍼졌고, 입안에서는 은은한 감귤 향이 뒤따랐다. 사람들은 그 맥주를 마시며 “이 계절을 병에 담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 한마디가 나에겐 최고의 찬사였다.
맥주를 만드는 일은 단순히 레시피를 따르는 과정이 아니다. 온도, 습도, 발효 시간, 원재료의 상태까지 모든 것이 맛에 영향을 준다. 특히 홉은 생명력이 강한 만큼 기분도 까다롭다. 하루만 늦게 수확해도 향이 달라지고, 보관 방식에 따라 개성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매번 직접 냄새를 맡고, 손으로 만져보며 상태를 확인한다.
수제맥주를 좋아하게 된 건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친구와 함께 여행 중에 들른 작은 펍에서 마신 IPA 한 잔이 시작이었다. 시중에서 흔히 마시던 맥주와는 전혀 다른 향과 쓴맛이, 마치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연 듯했다. 그 뒤로는 다양한 스타일을 찾아 마시고, 직접 양조를 배우기 시작했다.
탑홉펍을 운영하며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손님이 ‘이 맥주에 이런 홉을 썼구나’ 하고 맞힐 때다. 홉의 종류와 조합은 마치 향수의 원료를 고르는 것과 비슷하다. 시트러스 계열의 홉이 주는 상쾌함, 플로럴 계열의 부드러운 뉘앙스, 파인 계열의 묵직한 여운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완성되는 맛이 있다.
내 목표는 단순히 좋은 맥주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계절과 순간을 담아, 그때만 느낄 수 있는 향과 맛을 전하는 것. 그래서 매번 새로운 조합을 시도하고, 때로는 실패를 감수하면서도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결국 첫 모금에 담긴 이야기가 손님에게 닿을 때, 그 한 잔은 비로소 완성된다.